이 여자가 걱정을 한다.
지금 분명, 내 걱정을 하는 게…
착각이… 아니다.

핸드폰이 꺼져 버렸다.
다들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,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왔다.
-드르륵.
문이 열리고 내 앞에 우뚝 선 사람.
해인이다.
아직… 안 자고 있었구나.

설마,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?
생각지 못했던 상황에, 나도 모르게 물음표가 튀어나오려 했다.
하지만, 그 보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해인의 눈이 점점 커지며 기함하는 게 먼저였다.

“어떻게 된 거야? 퇴근한 게 언제인데 이 시간에 들어오면서…
얼굴은 또 왜 그 모양이냐고!”
나는 그대로 해인의 손에 잡혀 들어갔다.

“…맞았어?”
덥석. 그녀의 손이 내 얼굴을 부여잡았다.
순간 옴짝달싹 못하고 혀가 굳는다. 해인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, 머리가 휘둘린다. 해인의 시선이 머리끝부터 샅샅이 훑어 지나갔다.
난 지금 해인이의 손아귀에… 아, 정신을 차려야 한다.

“맞은 건 아니고…”
겨우 내뱉은 말이 이건가. 맞긴 맞았지만 맞은 건 아니라고?
그래. 제대로 된 펀치를 위해서 조금 맞긴 맞았지만, 이건 맞은 거라 할 축에 속하지 않는다.
대충 이런 뜻으로 해석해 주길 바라는 내 마음은 해인의 매서운 눈빛에 입안으로 그대로 꿀꺽, 삼켜졌다.

이 상황을 뭐라고 말해서 모면해야 하는가, 두뇌 회로가 풀가동 중이지만, 아무 소용이 없었다.
잔뜩 화가 난 해인이의 눈빛에, 입매에 시선이 고정되어 버린다.
뭐라고 해야 하지?
내 얼굴이 이 모양이 되어 버린 게, 별 거 아닌 일이라고 어떻게 설명해야… 해인이가 화를 내지 않게 되는 거지?
해인이네 집을, 회사를 되찾기 위해서 일단은 토지매매 사건부터 해결해야 하는 이 전반적인 상황과, 그 실타래를 조금이나마 풀고 왔다는 승전보를 알리는 게 먼저일까
아님, 내가 복싱을 해서 맷집도 세고, 나보다 걔네가 훨씬 더 많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먼저일까

넥타이가 순식간에 풀어졌다.
셔츠 단추가 하나 둘 풀어졌고, 뇌 회로가 자꾸만 안 돼, 안 돼를 외쳤다.
빠른 속도로 내 몸상태를 체크해 나가는 해인이를 바라보며 정신줄을 자꾸 놓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…
“해인아, 내가 얘기를 할게-”

“내가 얘기할게-
자, 잠깐만, 해인아, 얘기를…”

“ㅡ쓰읍!! 가만있어!!!”

“……”
참나.
내가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가 없다.
나는 해인이 앞에서는 왜 뭘 잘 못하는 걸까.
공부도 누구보다 잘했고, 복싱도 잘해서 사기꾼들도 제압해서 경찰서 넘기고 왔고…
회사일도 잘하고, 그 무엇 하나 어려울 게 없이 뚝딱뚝딱 해 내는데.
나는 해인이의 짧은 말 한마디에도 이렇게 곧잘 일시정지가 되곤 한다.
결국, 등에 있는 피멍까지 죄다 들켜버렸다.

“여기 왜 빨개?

“뭉둥이 같은 걸로 얻어맞은 거야?“

아… 젠장…
내가 해인이한테 숨길 수 있는 게 있을 리가.
그건 그렇고, 저 눈빛은 분노 게이지가 언리미티드, 예상 범주를 훨씬 벗어난 것 같군.
비, 비상이다.

“내, 내가…”

“설명을… 해 줄게…”

“내가 일방적으로 맞은 게 아니고, 혀 안 깨물었고, 안 얻어맞았고.
이거 봐. 아무, 아무렇지도 않잖아.
그냥 얼굴만 좀 긁힌 거야. 입가만 좀 터지고. “

“그건 왜 터지냐고, 왜!“
해인이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려있다.

뭐랄까.
야단을 맞고 있지만, 야단만은 아닌 것 같은 이 느낌.
그래서 뭔가… 긴장은 되지만 마음이 편안한 느낌.
쓰라린데 간지럽고 말캉한 느낌.

분명하다.

이 여자가.. 내 걱정을 하고 있다.

“이 와중에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3대 1이었어.”

“심지어 상대는 무슨, 삼단 봉, 이런 무기들을 구비하고 막 달려들었거든?”

“몰랐겠지만, 내가 어렸을 때, 복싱을 좀 했거든.
그 때 이, 맷집이라는 것이 생겨서 아, 이 정도는 아프지가 않고”

“아, 뭐야!! 아!!!”

“아….!!!!!!!”

”아, 이건 따가워 가지고…“

그래.
난 해인이를 안심시키고 싶었어.
어떤 상황이었는지, 나란 사람이 이렇게 가진 능력이 좀 있어서. 이 정도쯤이야 걱정할 정도의 축에도 못 낀다는 것을 설명해서
잔뜩 날카로워진 마음과 눈빛을 좀 어루만지고 싶었던 거야.
면봉에 묻힌 약을 내 입술의 상처에 바르는 손길은 부드러웠던 것을 알아서
목소리와 눈빛은 그저, 걱정하지 않는 척하기 위한 연기일 뿐인 것을 내가 알아서
그래서 나도 그 마음을 안심시키고 싶었거든.
그래서… 그래서 그랬어.
내가 해인이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,
수세에 밀린 듯 했지만, 내 능력을 발휘해서 히어로처럼 모든 걸 어떻게 해결했는지.

“…그렇지만 내가 이겼다.”
“하나도 안 멋있어.”

당황스럽다.
해인이의 날 선 눈빛이 자꾸만 예전에, 아주 예전 그때의 눈빛 같아서.

“앞으로 이런 상황 생기면, 도망가는 거야.“

“약속해.”

“……”

“……대답 안 해?”

“입 다물라며.”

“미안한데, 그 약속은 못 해.
서, 선약이 있어서.”

“너에 대한 건데”

“암튼, 나 자신과의 선약.“

“나에 대한 거,
혼자 맘대로 약속하지 마.”

“그런 건 결혼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고, 우린
그런 거 안 하려고 이혼한 거야.”

그래. 해인아.
나 자꾸만 잊는다.

자꾸만 잊어, 내가..
우리가 이혼했다는 사실을.

너는 이렇게 잘 알고 있는데,

나는 왜

자꾸만 이렇게 잊는 걸까.

나 분명.
얼마 전만 해도 너랑 이혼하겠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에 말하고 다니던 놈이었는데.
너와 곧 헤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뻐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감추지 못하던 놈이었는데.
나, 이상해.
우리가 이혼했다는 걸 정말 잊고 있기도 해.
조금 전처럼 네가 거칠게 말하면서도, 사실은 행여 정말 크게 다친 거 없나 걱정스러운 손길로 날 봐주는 동안에
아플까 봐서 살살 어루만지듯 연고를 발라주는 동안에
정말로 잊고 있었어.

해인아, 있잖아.
지금 우리 집에 와 있는 동안만이라도 모른 척해도 될까.
사실 난 이렇게 너랑 같이 있는 거, 많이 좋거든.
예전에 느꼈던 괴리감도 없고
아무리 사납게 굴어도, 아닌 게 보이고
아무리 날카롭게 말해도, 아닌 게 들리거든.

난 너 지켜줄 거야.
땡빚을 지고 와도 괜찮다고 했잖아.
땡빚이 아니라,
더 어려운 게 있어도 괜찮다고 말했잖아.
내가 같이 있을 거라고…
약속한다고.
그거 지금 다시 하는 거야.
10화 하이라이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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